온기통신
옛 연인이 낯선 여자와 함께 커플 요금제를 묶으러 들어온 날, 유라는 서랍 속에 남겨진 그의 흔적 앞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둘지 망설인다.
온기통신은 손님이 두고 간 관계의 무게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화면에 저절로 드러난 이름과 알림은 본 것으로 치되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재개발 공고 뒤에도 폐점 전까지 기존 계약과 보관 약속은 그대로 지켜진다.
철거를 앞둔 지하상가 끝, 온기통신의 계산대 위로 매일 누군가의 낡은 관계가 올라온다. 그날은 끝났다고도 이어졌다고도 말한 적 없는 강태오가, 같은 색 케이스를 든 여자와 함께 들어왔다. 서랍에는 그가 두고 간 유심 핀과 가족 결합 서류가 그대로다. 버리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물건들 앞에서, 유라는 이 멈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하게 될까.
버린다는 건 물건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게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인정하는 일이라는 걸 떠올려 보세요.
끝났는지 이어졌는지는 한 사람의 마음만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물건을 어떻게 두었는지 살펴보세요.
보고도 말하지 않는 자리에서, 무엇을 끝까지 입에 담지 않는지가 그 사람의 마음입니다.
무심해 보일 만큼 조용히 진심을 닫아 두지만(한 음), 남이 두고 간 물건의 무게를 쉽게 가볍게 만들지 못하고 버려야 할 것을 서랍 깊은 곳에 넣어 오래 참는 사람이다. 손님의 관계가 끝나는 방식을 묵묵히 지켜보며 자기 상처는 늦게야 서늘하게 드러낸다(영).
상냥한 말로 빈칸을 덮는 데 익숙하고, 끝내야 할 일을 끝냈다고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람을 오래 기다리게 한다. 좀처럼 마음을 분명히 열지 않아 곁에 있어도 거리가 느껴지는 사람으로, 과거는 농담으로 흐리고 현재는 유난히 짧게 말한다.
예의를 갖춘 거리 안에서 상대의 낡은 흔적을 빠르게 알아차리고, 불편한 침묵을 아름답게 포장하려 애쓰지만 손끝에서는 긴장이 먼저 드러난다. 미안함을 직접 말하기보다 상황을 부드럽게 접어 넣으려는 사람이라, 계산대 아래 서랍을 의식하면서도 끝내 모른 척한다.
밝은 목소리로 생활의 무게를 농담처럼 던지지만, 오래 쓴 케이스처럼 쉽게 접히지 않는 버팀과 체념을 함께 지녔다. 동네 사람답게 살갑고 빠르지만 중요한 말 앞에서는 갑자기 생활 소리까지 낮추는 버릇이 있어, 낡은 번호를 끊지 못한 채 새 번호를 만들러 온다.
망가진 부품은 빨리 갈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버려진 나사 하나까지 종이에 싸 두는 사람이며, 유라가 말하지 않는 상처를 서둘러 설명하지 않고 옆에서 기꺼이 기다려 준다. 위로를 길게 하지 않고 필요한 도구 이름이나 사소한 확인으로 마음을 우회한다.
인연 지도
바깥선은 서로 힘을 보태는 방향 · 안쪽 점선은 부딪히거나 흔들리는 방향입니다
서유라에게 이들은 이런 사람입니다
- • 강태오 — 나를 흔드는 상대
- • 윤해린 — 내가 영향을 주는 상대
- • 문지아 — 나를 도와주는 상대
- • 오민준 — 내가 도와주는 상대
끝까지 답을 찾으면, 진실과 마음을 모두 손에 넣어요.
답은 맞지만, 풀리지 않은 마음 하나가 남아요.
엇나간 선택은, 사람 사이를 한 발 멀어지게 해요.
닿지 못한 답장처럼, 이야기가 열린 채 남아요.
당신이라면 그 서랍을, 끝내 비우겠어요 아니면 둘래요?